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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스탄불의 옛 유적들(2004-1-27)      
강성열     2004-02-15 (일) 00:00    추천:690     조회:11550     218.xxx.119
아침 일찍 전용버스를 타고 출발하려니 잠을 별로 자지 못한데다가 시차 적응도 제대로 하기 전에 신속하게 다음 방문지로 이동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인지 모두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에 가능한 한 많은 선교 유적지들을 탐방해야 한다는 이번 성지순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다행히 “33인의 원정대”는 한 사람도 피곤한 기색이 없이 신속하게 움직여주었다. 음식이 여러 모로 입맛에 맞지 않아 신체적인 부담이 가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지순례를 떠나오기 전에 기도로 충분히 영적인 무장을 했기 때문이리라.

첫 탐방지는 히포드롬(Hippodrome) 광장이었다. 히포드롬은 본래 로마의 셉티미우스 세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만들어지고, 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확장된 노천 원형극장으로서, 당시 규모는 폭이 117m, 길이가 480m에 달했으며 10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도 바로 다음에 우리가 찾아갈 블루 모스크와 일부 광장만이 남아 있다. 그 일부 광장에는 몇 가지 고대 기념물이 남아 있는 바,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및 힛타이트 등을 정복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26m 높이의 오벨리스크(방첨탑)이다. 본래는 이집트의 테베에 있던 것이었는데,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테베에서 이곳 히포드롬 광장에 옮겨다 세워놓은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 바로 옆에는 나선형의 뱀 세 마리가 엉켜져 꼬여 있는 모습의 구리기둥이 철책 안에 보존되어 있다. 이 기둥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머리 부분이 깨뜨려져 있어 전체적인 형상을 알 길이 없으나, 그 일부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다.

바로 이어서 찾아간 곳이 그 유명한 블루 모스크였다. 터키 사람들에 의해 ‘술탄 아흐멧 모스크’(Sultan Ahmet Mosque)라고 불리는 이 건축물은 오스만 터키 제국의 14번째 왕(술탄)인 아흐멧 1세가 20세 때 성 소피아 성당을 능가하는 회교 사원을 세우기 위해 유명한 건축가 시난(Sinan)의 제자 메흐멧 아가(Mehmet Aga)에게 지시하여 만든 것이다(1609~1616년).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사원에 속한 이 모스크는 푸른빛이 나는 타일로 내부를 장식했다고 하여 블루 모스크(Blue Mosque)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이 사원이 완성되자 왕들은 이곳을 중요한 종교 정책을 결정하거나, 종교적 축제를 거행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블루 모스크를 지나 조금 이동하니 예레바탄 사르니키(Yerebatan Sarnici)라고 알려진 거대한 지하 물 저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일명 ‘지하 궁전’으로도 불리는 이 물 저장고는 이스탄불의 물 공급을 책임지던 것으로서, 주후 532년에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지어졌으며, 140m x 70m의 크기에 각기 다른 모양의 8m 높이 대리석 기둥이 4m 간격으로 336개나 서 있는 거대한 지하 저수지이다. 이 지하 저수지의 가장 안쪽에는 기둥을 받치고 있는 메두사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하나는 거꾸로 또 하나는 옆으로 뉘어져서 높고 무거운 기둥에 짓눌려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메두사는 본래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여신 아테나의 신전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을 통했다고 하여, 아테나 여신의 저주를 받아 무서운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슬람교도들이 타종교를 배척하는 의미에서 메두사의 머리를 엎어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지하 물 저장고를 지나 선착장으로 가니, 보스포러스 해협(Bosphorus Straits)을 관광하는 유람선(이른바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람선을 탔더니 유람선 뒤를 따르면서 관광객들이 먹이를 던져주기를 기대하는 갈매기 떼의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스탄불을 양분하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에 위치한 곳으로서,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지중해를 잇는 아주 중요한 해협(31.7km)이다. 흑해의 엄청난 자원들이 서방 세계로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는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선으로 하여 서쪽의 유럽과 동쪽의 아시아가 둘로 나누어지는 까닭에, 이 해협을 가슴에 안고 있는 도시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유일한 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스포러스 해협 연안의 한 현지 식당에서 점심을 든 후에 비잔틴 건축물의 표본으로 꼽히는 그 유명한 성(聖) 소피아 성당을 찾았다. ‘거룩한 지혜’라는 뜻을 가진 이 성당은 주후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에 의해 건축된 후 소실되었다가, 537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된 것으로서, 본래는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길이 81m, 너비 70m의 널찍한 내부 공간과 지상 56m 높이(15층 건물 높이)에 받침기둥도 없이 떠있는 직경 32m의 거대한 네 개의 돔들은 왜 사람들이 이 건물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듯했다. 오죽 했으면 헌당식에 참여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성 소피아 성당을 솔로몬 성전에 비교하면서, “오! 솔로몬이여! 내가 드디어 그대를 능가했노라!”고 외쳤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장대하고 신비스럽던 성 소피아 성당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터키에 망하면서(1453년), ‘아야 소피아’라 불리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고 말았다. 1935년에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인 아타 투르크 장군(케말 파샤)에 의해 박물관으로 개조될 때까지 5백여 년 동안이나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된 탓에, 그 안에 이슬람 관련 문양들과 장식들이 많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슬람 제국이 성 소피아 성당을 회교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그리스 정교의 화려한 성화들과 모자이크들을 그대로 두는 종교적인 관용책을 실시한 결과 기독교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성당 내부를 둘러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성당 출구 쪽에 있던 한 모자이크 그림이 특히 그러했다. 이 그림의 중앙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오른쪽에는 도시를 바치고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 왼쪽에는 교회를 바치고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성 소피아 성당의 산 역사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흥미로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이 건축물은 이슬람 세계에 영향을 미쳐, 비잔틴-이슬람 문화의 융화라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낳게 했다고 한다.

성 소피아 성당 관람을 마친 후에, 18개의 출입구와 4천개 이상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불 제1의 시장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r)를 잠시 동안 관광하였다.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어 그곳을 그냥 빠져나온 후, 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서 서양 서사문학의 원조로 불리는 호머(Homeros,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저자)의 고향 이즈미르(Izmir), 더 정확하게는 성경에서 ‘서머나’(Smyrna, 계 1:11; 2:8)로 불리는 터키 제3의 도시를 향해 이동하였다. 이즈미르에 있는 폴리캅 기념교회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즈미르에 도착할 무렵에 이미 해가 지는 바람에 폴리캅 기념교회를 관람할 수 없게 되었다. 너무도 아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서머나를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으므로, 서머나 교회와 폴리캅 기념교회에 대해서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정보를 함께 나눌 필요가 있겠다. 서머나 교회는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 교회 중의 하나로서, 사도 요한이 지도 감독하고 그의 제자 폴리캅이 초대 감독을 지낸 유명한 교회였다. 폴리캅은 86세 때에 로마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던 중에 화형을 받고 순교한 위대한 신앙의 위인이었다. 이즈미르에 왔으나 그의 기념교회를 가까이서 대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안은 채로, 어둠 속에 잠긴 교회 앞을 지나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이름아이콘 주철현
2004-02-16 00:00
부담없이 빨리 쓰시면 빨리 읽고 좋겠다 생각했지만 역시 꼼꼼하게 정보를 올려놓으시니 순례 일정이 정리가 되고 너무 좋습니다. 이 기행문은 책으로 출판해야 겠는데요~ ^^  글구 사진 빨리 보고파요~
   
이름아이콘 강성열
2004-02-16 00:00
이야! 기행문 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13년 전에 일본 갔다 와서 쓴 후로 처음 쓰는 건데, 한 줄 쓰는데 몇 십분 걸릴 때가 있다니까니.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려고 이 책 저 책, 이 자료 저 자료 뒤지다 보면 시간만 자꾸 흐르고... 논문 쓰는 것 못지 않게 어렵당. 으이그 이놈의 주댕이가 문제야. 기행문 쓰겠노라고 마구 퍼뜨려 놨으니. ㅉ ㅉ... 그래도 재미있수다. 어느 때보다도 재미있었던 여행이었으니까^^
   
이름아이콘 정영효
2004-02-19 00:00
다시금 그시간들이 생각나네요....후유증이 너무 심했는데.....넘 감사해요
   
이름아이콘 강성열
2004-03-23 23:12
 기행문 말미에 달아놓았던 사진들(25개)은
전부<사진자료실>로 옮겨다 놓았습니다.
그곳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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