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7) 시리아를 거쳐 요르단으로(2004-1-31): 지도 첨부

강성열 2004-02-19 (목) 00:00 추천:574 조회:27679 218.xxx.119

우리가 두 번째로 거쳐 가게 된 시리아는 ‘시리아 아랍 공화국’(Syrian Arab Republic)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시리아 역시 터키와 마찬가지로 회교권 국가이다. 그러나 터키와는 달리 전형적인 아랍 국가여서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공화국이어서 그런지, 북한과는 외교 관계가 수립되어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와는 그렇지 못한 채로 있다. 이른바 미수교 국가인 셈이다. 현재 시리아의 인구는 1700만 명 정도이며, 남북한 합한 것보다는 조금 작지만, 북한보다는 조금 큰 나라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쿠르드족이 전체 인구의 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자체적으로 석유를 생산하는 나라여서, 석유 문제에 관한 한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바로 위에 있는 터키는 그렇지 않다. 터키는 석유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국의 결재를 받지 않으면 석유 생산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지식인층의 불만이 높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터키에 머무는 동안 도심지에서는 호텔이고 주택가이고 간에 한결같이 갈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어서, 연탄가스 냄새가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했었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도시만 빠져 나가면 그 냄새에서 해방되었지만... 그런데 미국의 결재를 받을 필요가 없는 시리아에서는 연탄가스 냄새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터키처럼 못 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림엽서나 토산품을 판매하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one dollar! one dollar!’를 외치는 이른바 one dollar people이 터키에도, 시리아에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루를 머문 곳은 앞서 말한 대로 시리아 제2의 도시인 알레포(Aleppo)였다. 알레포는 회교권 국가인 시리아에서 유일하게 회교 사원보다도 기독교회-개신교는 아니지만-가 더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의 기독교 센터가 되는 도시인 셈이다. 꼭 이 점이 아니더라도 알레포는 구약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왜냐하면 구약성서 사본들 중에서 대단히 비중이 큰 알레포 사본(Aleppo Codex)이 발견된 곳이기 때문이다. 주후 930년경 슐로모 벤 부야(Shelomo ben Buya)에 의해 쓰여지고, 아론 벤 모세 벤 아셰르(Aron ben Moses ben Asher)가 교정을 한 양피지 사본이다. 현존하는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서 본문 전체가 수록되어 있는 사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사본은 원래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14세기 말부터 알레포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왔기 때문에 ‘알레포 사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현재는 예루살렘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사본이 모든 성서학자에게서 존중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초기 티베리아 맛소라 학파의 전통을 거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정확한 히브리어 성서본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에서는 1976년 이 알렙포 사본을 팩시밀리판으로 편집하여 500부 한정인쇄 발행하였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대한성서공회가 제500번째의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다. 원래 380장의 양피지 양면(兩面), 즉 760면에 구약본문을 써놓은 것으로서 현재 남아 있는 양피지는 294장으로 588면에 이른다. 구약 본문 전체를 가지고 있기는 해도 부분적으로 소실된 데가 있어서 맛소라 본문으로서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사본임에는 틀림이 없다. 현재 맛소라 공인본문(Textus Receptus)으로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구약성서 완질사본, 곧 레닌그라드 사본(Codex Leningradensis)에는 다소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의 본래 일정으로는 어제(30일) 오후에 시리아 국경을 통과한 직후 12세기 아랍 요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알레포 고성(古城)을 관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경 통과가 예상 외로 지체되는 바람에, 해가 진 후에야 비로소 알레포에 도착하게 되어 고성 구경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오늘 아침에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Damascus)로 내려가는 길에 서둘러 알레포 고성 앞으로 가서 사진만 찍고 가기로 했다. 이 성은 12세기의 십자군 원정 때 북부 시리아 지역 회교도들의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되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당시에 이 성은 십자군을 격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알레포 고성 앞에서 급히 사진을 찍은 다음에 전용버스를 타고 알레포에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에블라(Ebla) 유적지로 이동하였다. 지난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역사에서 소멸된 채로 있던 에블라는 1960년대 말부터 북부 시리아의 텔 마르딕(Tell Mardikh)의 발굴로 조금씩 그 웅대한 제국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에블라가 발굴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전 3천년대의 시리아에 관한 문헌이나 정보가 없었으므로 고대 근동의 역사는 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관점에서 기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에블라 제국이 주전 2500년경을 전후한 시기의 왕국(악카드의 사르곤 왕에 의해 2250년경에 멸망)으로 판명됨에 따라 적어도 주전 3천년대의 고대 근동의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비길 만큼 시리아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에블라가 위치한 북부 시리아 지역이 가나안 지역과 근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볼 때에도 구약 족장 시대에 앞선다는 점에서, 에블라에서 발굴된 16,000여개의 점토판 자료들은 구약성서의 초기 역사에 매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탈리아 고고학 발굴단에 의하여 발굴된(1974년-l976년) 에블라의 토판들과 문서 자료들이 아직까지 완전히 해독, 출판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밝혀진 문헌들에 의하면, 에블라 왕국은 당시의 주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Ishtar), 지하계의 신 레쉐프(Reshef), 태양신 샤마쉬(Shamash) 등의 여러 신들을 섬기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넓은 에블라 유적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사진도 찍은 후에, 다마스커스로 이동하였다. 지중해 해안 쪽으로 한두 시간만 이동하면 그 유명한 우가릿 왕국(Ugarit, 오늘의 Ras Shamrah)의 유적지를 방문할 수 있었으나, 우리의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 매우 아쉬웠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가릿에서 발굴된 문헌들은 주전 14-13세기의 가나안을 조명해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히브리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의 여러 관용어구나 문학적 기교, 주제 및 소재 등과 현저한 평행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착 이후 경험해야만 했던 가나안 종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바알 신화집(Baal Cycle)은 구약의 하나님 개념에 대한 연구와 시편 연구에 커다란 빛을 던져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가릿 뿐만이 아니다. 동쪽의 이라크와 접해 있는 텔 하리리(Tell Hariri) 역시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빡빡한 일정 때문에 마음만 있지 몸으로는 갈 수가 없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이 도시는 유프라테스 강의 중류에 위치하였던 고대 도시 마리(Mari)의 유물이 대량 발견된 곳이다. 이 고대 도시의 발굴은 1933년 이래 앙드레 빠로(A. Parrot)가 지휘하는 프랑스 발굴단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마리는 주전 3000년대에 이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곳에서 발굴된 많은 쐐기문자 토판 문헌들은 구약 족장 시대의 생활환경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이른바 구약의 재발견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이곳 마리에서 발굴된 유물들과 우가릿에서 발굴된 유물들, 그리고 에블라의 유물들을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는 알레포 국립박물관을 가보지 못한 것도 아쉬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향할 때 거쳐 갔다는 팔미라(Palmyra)-다마스커스와 마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를 구경하지 못한 것도 다소간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곳에 남아있는 유적은 대부분 주후 1∼3세기 로마시대에 지어진 것으로서, 시리아 최고의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한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되면 반드시 이곳들을 먼저 방문하리라 다짐하고서, 다마스커스로 향해 가는 길을 재촉하였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에블라에서처럼 하마(Hama)에서 잠시 머물렀다. 하마는 성경에서 하맛(Hamath)으로 알려진 곳이요, 이스라엘의 이상적 경계의 북쪽 끝 지역으로 자주 언급되던 곳이다(민 34:8; 왕상 8:65; 왕하 14:25; 대상 13:5; 암 6:14). 하맛 왕국의 통치자인 도우는 아들 하도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조공을 바친 적이 있었다(대상 18:9-10). 이러한 역사적인 도시를 방문한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리라. 우리가 여정 중에 잠시 들른 곳은 하마의 수차 공원이었다. 하마 경계 지역의 오론테스 강물을 이용한 커다란 수차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하마를 떠나 한참 동안 달린 후 드디어 오늘의 주 목적지인 다마스커스, 곧 성경상의 다메섹에 도착하였다.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곳이 다메섹 도상이라던가! 그래서인지 더욱 정이 가는 도시였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바울이 다메섹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알고서 광주리에 의지하여 성밖으로 피신했다는, 이른바 바울의 도피처로 알려진 성벽이었다(행 9:23-25). 그곳에 기념교회(바울교회)가 하나 있었으나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만 사진을 찍었는데, 2천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변 경관은 많이 바뀌었지만, 이방인 선교사로 부름 받은 바울의 고생과 생명 위협이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자신의 생명과 삶 전체를 주께 바친 바울의 결단이 우리 모두의 결단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그곳을 떠나 아나니아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도행전 9장에 의하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잠시 시각 장애인이 된 바울은 다메섹의 직가(直街, Straight Street)에 있는 유다의 집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주의 명령을 받아 자기를 찾은 아나니아에게서 안수를 받고서 시력을 회복하며, 장차 이방인의 사도가 될 것이라는 주의 말씀을 받는다. 둘 사이의 이러한 만남을 기념하는 교회가 바로 아나니아 교회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나니아 교회는 예배당 본 건물이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의 힘겨운 신앙생활의 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것은 어쩌면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된 바울의 선교 사역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나니아 교회를 떠나 점심을 먹을 식당으로 가는 길에 바울과 아나니아가 걸었음직한 직가를 직접 걷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의 직가는 거리 양쪽으로 온갖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장터로 바뀌고 만 것이다. 그래서인지 직가 시장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다.

점심 식사 후에 식당 근처에 있는 우마야드 모스크(Umayyad Mosque)로 걸어서 이동하였다. 우마야드 모스크는 시리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으로, 이슬람 제국의 첫 번째 왕조인 우마야드 왕조 때 세운 것이다. 이 모스크는 규모뿐만 아니라 사원 안팎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본래 이 모스크 자리에는 기독교 시대인 비잔틴 제국 시대에 시리아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세례 요한 교회가 있었으나, 우마야드 왕조에 의해 주후 8세기경에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엄격한 이슬람 계율로 인하여 여자들은 모스크에서 빌려주는 모자 달린 검은 색 가운을 걸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남자들에게는 그러한 제약이 없었지만 말이다.

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례 요한의 머리 무덤이 돔형의 작은 건물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전승에 의하면 헤롯 안디바에게 참수당한 세례 요한의 머리가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고 하나 확인할 길은 없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머리 무덤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알레포와 사마리아 입구의 요한 성당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례 요한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청빈과 무소유의 정신을 가지고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했다는 점이요, 그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진리와 정의를 위해 살아간 하나님 나라의 참 예언자였다는 점이다. 그의 순결한 믿음과 예언자적인 용기를 본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 욕심을 버리고 어린아이 같이 순전한 믿음으로 그의 길을 따르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다메섹에서 남쪽으로 18km 떨어진 곳에 있는 바울 회심 기념교회를 찾아갔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인지 현지 가이드와 운전 기사도 그곳을 쉽게 찾지 못했다.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아 해 지기 전에 가까스로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카우캅(Kaukab) 마을에 있다 하여 카우캅 교회라고도 불리는 바울 회심 기념교회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 눈이 먼 곳에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로마 정교회 소속 교회였지만 그곳의 직원이 따뜻하게 맞아주면서 그 교회에 관해 설명하는 안내 책자를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그 장소의 역사성 여부를 떠나서 바울의 회심 및 그의 이방인 선교 사역이 갖는 교회사적인 비중을 머리에 그리면서 다메섹을 떠나 요르단 국경으로 향했다. 이틀 동안의 짧은 시리아 여정이었지만, 여러 모로 유익한 순례 여정이었다. 더 많은 곳들을 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빠듯하여 다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다. 시리아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음 목적지인 요르단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리아나 요르단이나 아랍어를 사용하는 같은 회교권이어서 그런지 국경 통과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국경을 건넌 즉시 “33인의 원정대”를 태운 전용버스는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의 숙소로 이동하였다. 이렇게 해서 또 하루가 저물어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