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부와 가난에 대한 잠언의 가르침

강성열

2010-05-20 (목) 20:21 추천:459 조회:8760 211.xxx.126

<큐티 성경통독 2010-5월호 바이블 칼럼>

- 부와 가난에 대한 잠언의 가르침 -

인간의 삶에 있어서 부와 가난의 문제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 까닭은 그것이 행복한 삶의 조건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것인데다가, 때로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좌우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문제는 구약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로 나타나며, 상당수의 구약 본문들은 그것을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 규정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등처럼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나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지 말고 그들을 보호하라고 명하는 많은 법규들(출 22:21-27; 23:10-11; 레 25장; 신 10:18; 14:28-29; 15:1-11; 24:10-22; 26:12-13 등)과 예언자들의 메시지(사 1:17; 3:13-15; 렘 7:5-6; 22:3; 암 5:22-24; 미 6:6-8 등)가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지혜서의 범주에 들어가는 잠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잠언은 이들 법규들이나 예언자들의 메시지에 버금가지는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난한 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삶의 지혜에 대해서 교훈하는 저자의 가르침에 의하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14:21, 31) 또 기꺼이 그들을 구제하는 자이다. 그는 자신의 넉넉한 재물을 나누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또 그들을 윤택하게 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더욱 풍족하여지고 더욱 윤택하여질 것이다(11:24-25; 19:17).

그러나 거꾸로 자신의 재물을 너무 아끼거나 재물에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다. 더 나아가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는커녕 그를 학대하고 억압하고 조롱하는 행위는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14:31; 17:5). 잠언의 다른 부분에 의하면, 하나님은 힘없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거나 재앙을 만나 어려움에 처한 자를 보고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벌하신다(17:5; 22:23; 23:10-11; 참조, 15:25). 이것은 사회의 약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그들을 보살피지 못한 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설교와 맥을 같이 한다(마 25:31-46).

잠언은 이처럼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와 가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인과율의 원리를 적용하기도 한다. 잠언에서 부는 그것이 갖는 효용성으로 인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에게 주신 복(10:22)으로, 그리고 부지런하고 의로운 삶에 대한 보상(10:4-5)으로 이해되는 부는 그것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많은 친구를 얻게 해주며(14:20; 19:4), 견고한 성벽과도 같이 그를 안전하게 지켜준다(18:11). 그것은 심지어 사람의 생명을 속할 수 있는 것으로까지 얘기된다(13:8).

이에 반하여 가난은 잠언에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사회 현실을 두고 볼 때, 가난한 자들의 경우, 넉넉한 재물이 없으면 그들에게 닥치는 각종 위협과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잠언의 지혜자는 가난을 친구들이나 형제들에게까지 미움을 받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며(19:7), 산상수훈(눅 6:20-21)에서처럼 영성을 증진시키거나 신앙적인 성숙을 나타내는 덕목이 아니라, 기대해서는 안 되고 도리어 기피해야 할 무기력함과 비참함의 상태로 규정한다(10:15). 그는 또한 가난을 게으름의 결과로(6:6-11; 10:4; 13:4; 19:15; 20:4, 13), 또는 악인에게 주어지는 형벌로 이해하기도 한다(12:27; 13:4, 25). 그 까닭에 그는 부자들로 하여금 신령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려고 노력하라거나 재물을 포기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 잠언의 지혜자가 불의한 사회 구조를 용인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힘 있고 강한 자들이 악행을 통하여 가난한 자들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28:15; 30:14). 그리고 가난한 자들 중에는 의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는 가난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가르친다(15:16-17; 16:8; 17:1; 19:22; 28:6).

잠언의 지혜자는 또한 가난이 항상 악행이나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부가 부정직함과 불의한 방법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는 악한 부자가 패망하고 의롭고 가난한 자가 구속받는 정의로운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2:21-22; 21:13; 22:16).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을 지혜로운 자들의 사회적인 책무로 봄으로써 힘없고 약한 자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게 하려는 지혜자의 의도가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오늘의 우리는 부와 가난에 대한 이상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담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