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부활절을 맞으면서: 고난과 부활이 주는 의미

강성열 2003-04-12 (토) 00:00 추천:552 조회:8387 211.xxx.125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기독교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라고 말이다. 사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기독교에서 이 두 가지를 뺀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은 전혀 무의미한 것으로 바뀌고 만다. 십자가와 부활은 참으로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요, 그 존립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죄인된 우리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 사랑의 극치이다. 이사야 53:6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선언한다.

죄인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예수를 십자가에서 버림받게 했던 것이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당한 수난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라는 외침 속에서 절정에 이른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을 감수하셨다. 그의 죽음은 참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드리는 거룩한 속죄 제물이었다.

그러나 죄인된 우리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완성된다. 부활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려는 하나님의 구원 은총에 기인한다. 그것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수난과 죽음이 있기에 부활이 가능하다. 부활의 영광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고 얻는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래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요 12:24).

우리는 죽음과 부활 사이에 놓인 이러한 역동적인 상호 관계를 충분히 자신의 언어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오늘의 교회는 성공과 번영의 욕구는 많이 가지고 있어도, 남을 위해 고난을 달게 받겠다는 희생과 섬김의 정신에는 메말라 있다.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이나 어려움보다는 즐거움과 안락을 좋아하고, 고생 끝에 얻는 성공보다는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신앙의 요술 방망이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십자가의 고난보다는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알고 보면 수난과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부활 신앙을 정면에서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다. 남들이 고생 끝에 얻은 것을 자기만은 순식간에 얻겠다고 하는 부질없는 욕망을 접어두지 않는 한, 풍요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부활 신앙을 바로 실천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이 철저한 자기 비움의 결과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기 비움 자체가 곧 수난이요 고통이요 죽음을 뜻한다. 바울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십자가와 부활은 본질상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신(빌 2:6-7) 예수의 자기 비움을 통해 가능케 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름지기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고난과 수고를 기쁘게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기심과 더러운 정욕과 세상적인 욕심 등을 버리고 이웃을 찾아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을 위해 어떠한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부활의 영광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 있어야 부활의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역으로 부활에 대한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목에 칼이 들어오고 가슴에 총부리가 겨누어져도 그것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부활의 소망이다.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한결같이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시대에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를 마다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의 견고한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그 까닭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57-5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부활이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승리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라는 것은 꼭 육체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죽음은 육체적인 것을 넘어서서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한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대적하는 모든 악의 세력을 지칭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부활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의 무리들과 죽음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를 상징한다. 오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어둠의 세력들에게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렇듯이 참다운 부활 신앙은 혼란과 불의(죽음) 속에서도 새로운 질서와 정의(생명)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신앙에 다름 아니다. 세상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교회까지도 위협하는 악의 세력은 오로지 부활 신앙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음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