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3.4%의 실천

강성열 2003-02-22 (토) 00:00 추천:861 조회:7630 211.xxx.125

<1998년 6월 광주 벧엘교회 회보에 실었던 글입니다. 철이 조금 지난 글이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작년 말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대위기를 맞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위기가 ‘6.25 이후의 최대 국난’이라고도 말한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50주년이 되는 해여서 IMF 한파에 직면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더욱이 급격한 고용기반의 붕괴로 갈수록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실업률이 가파른 곡선을 그으며 치솟고 있는 터여서, 상당수의 국민들은 자신에게 닥칠 미래가 어떤 것일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설령 IMF 체제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개혁 정책이 순탄하게 이루어져서 경제 회생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100만 명 이상의 고실업이 적어도 3-4년간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국민들이 겪는 좌절감과 절망감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토록 끔찍한 국가 위기가 언제 끝날런지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이제 겨우 어두운 터널의 입구에 들어섰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 터널이 얼마나 길지, 그리고 그 긴 터널을 빠져 나가려면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따지고 보면 이러한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 모두 무수한 위기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위기 자체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어떠한 마음 자세로 잘 극복하느냐 하는 데에 있다. 위기를 맞이하는 마음 자세가 어떠하냐에 따라 위기를 이겨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관계없이 누구나 위기를 만나면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살펴보게 된다. 어디에 무슨 문제가 있으며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원인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긴장감, 원인 분석, 시정과 개혁의 노력-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의 위기에 대해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 이유를 우리는 출애굽기 19:6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구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고 또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비롯한 많은 법들을 주셨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해방이라는 엄청난 하나님의 구원 은총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그러한 법들을 지키고 그에 순종함으로써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으며, 거룩한 백성이 됨으로써 마침내는 세상 모든 민족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거룩한 백성이 되지 못했고 따라서 제사장 나라도 될 수 없었다.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고 말았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막(聖幕)을 진영의 한복판에 세우라고 명하신 적이 있었다. 진을 거두고서 행진할 때에도 성막을 한가운데 두고서 행진하라고 하셨다. 왜 하나님은 그러한 명령을 주셨을까? 성막은 오늘의 성전에 해당하는 것이다. 성막이 이스라엘 진영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세상의 중심이요, 또한 세상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집인 것이다.

사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한국 사회의 성막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이스라엘처럼 한국 사회의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부름 받았다. 한국 사회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부름 받았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제사장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국 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전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려고 엄청난 교회 성장을 가져다 주셨는데, 한국 교회는 아직 하나님의 기대에 많이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교회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21세기를 넘어서는 문턱에서 우리에게 위기를 주셨는지 그 뜻을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를 불러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분석하고 고쳐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제사장 역할을 제대로 하여 하나님의 선교에 힘쓸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일들 중에 가장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검소한 삶일 것이다. 요즘 매스콤에 자주 언급되는 것 중에 이른바 ‘아나바다’ 운동이라는 것이 있다. 이제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지게 된 아나바다 운동은 쉽게 풀어서 얘기하자면 아껴 쓰고 나누어 주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는 삶을 살자는 운동을 일컫는다. 이 아나바다 운동은 이제껏 우리나라 사람들이 곧 선진국이 된다는 허상에 빠져 너무도 많은 낭비를 해 왔음을 반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사치와 향락 풍조가 지금도 부유층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IMF 체제에 들어가면서 자동차 사용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보도가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다시금 길거리에서 예전처럼 많은 차량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말 그래야 하겠는가를 반성하는 마음에서라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서 아나바다 운동에 힘써야 한다. 한국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운동에 적극 힘쓴다면 사회 분위기는 놀랍도록 바뀔 것이다.

두 번째로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나누어 주는 삶이다. 경제 위기가 거듭될수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늘어난다.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로 인해 직장을 잃는 사람이 늘고 경기 침체로 인해 공장이나 가게 문을 닫는 사람이 늘면서 경제적인 궁핍이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써야 한다. 사랑을 실천하고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어떻게 보면 한국 교회가 세상과 사회에 대하여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한국 교회는 계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섬김에 인색하다는 비난을 많이 들어 왔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순전히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이타적이고 사랑과 정이 많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정반대로 이기적이고 자기 잇속 챙기는 데에 발빠른 사람들이라는 지탄을 받아 온 것이다. 물론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랑과 섬김의 정신을 부지런히 실천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수보다 훨씬 적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주님께로부터 받은 구원 은총과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데 진력해야 한다. 컵이나 그릇에 물을 부으면 그 컵이나 그릇의 높이만큼 차다가 마침내는 넘쳐흐르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이 부어져서 넘친 흔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그릇 만큼만 사랑이 찬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진 바 된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힘없고 약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흘러 넘쳐야만 한다. 그것은 단순히 고통 분담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복음의 본질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마태복음 5:16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흘러넘치는 사람은 착한 행실을 통해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이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신앙 덕목은 정직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경제 위기를 불러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도 한국 사회의 부정직과 부패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전문가들이나 외국 언론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지금의 국가 위기는 한국 사회의 부정직과 부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오죽 했으면 한국 사회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려면 부패와 부정직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했겠는가.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돈 봉투가 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잘못된 풍토가 사회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건 간에 이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정직하다면 불필요한 비용이 들지 않을 텐데 말이다. 서양 선진국들이 잘 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정직이다. 물론 그 정직은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어도 잘 산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사회와 국민들 개개인이 정직하기 때문이다. 정직이야말로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올릴 수 있게 하고 그럼으로써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그렇게 안 되는가?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신실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1천만 정도 있다는데, 왜 사회가 맑아지지 못하며 투명해지지 못하는가? 바다에는 소금이 3.4% 정도 밖에 없어도 그 적은 양의 소금으로 인하여 자기 정화 기능을 갖는다고 하는데, 한국이라는 바다 안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소금이 무려 25% 정도가 있어도 도무지 사회가 변화되지 않고 있으니 대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나라가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정직성을 회복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필요 이상의 사소한 이득에 눈이 멀어서도 안 된다. 무슨 일이든 원칙대로 정당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경제 위기를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일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원칙대로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손해를 각오하고서 정직을 지킨다면 교회는 정말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게 되고 그 결과 교회는 신용을 회복함과 동시에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강성열 2023-09-16 22:49	23-9-17 naver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