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겉과 속은 다르다.

밝은 귀 2005-06-01 (수) 16:10 추천:205 조회:2579 211.xxx.242

제목: 겉과 속은 다르다.

   사람들은 꼭 같은 일을 겪고도 또는 꼭 같은 곳에서 살면서도 느끼는 이해의 척도는 무척 다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살 때 어떠했는가를 묻는다면 어느 시기, 어느 곳에서 살았는가에 따라 그 이해가 확실히 달라진다. 또 꼭 같은 나라에 살지만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 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 게 중에는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 간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일본은 그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공부하러 일본을 간 사람들에게 일본에 대한 기억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또 돈을 벌어들이러 일본으로 간 사람의 경험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메스컴을 통하여 정신대 할머니들이 접했던 일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이럴 경우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 이야기를 모두 접하게 된다. 그러나 메스컴은 본질상 국가 정책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느 특정 사건을 보다 더 부각시킬 수 있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20세기 초 함경도 일대에서 일본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한 사람들에게 일본은 더 할 나위 없이 두려운 나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돈이라도 있어 공부를 하러 일본으로 간 사람들에게 일본은 배울 점이 무척 많은 곳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돈을 벌어들이러 현해탄을 건넌 사람들에게 일본은 마치 기회의 땅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는 일제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 말을 잊지 못하는 한 할머니와 또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일본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종종 들려 주셨던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극히 조금 싣는다. 물론 이 두 할머니는 부정적 시각을 가진 분들이 아니라 일본에 돈을 벌어들이러, 또는 살기 위해서 현해탄을 건넌 분들이다.

   우선 한마디로 말하면, 이 두 분들은 자기들이 젊을 때 겪었던 조선의 모습과 일본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는 듯하다. 그리고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 데, 그 말은 “짐승적인 삶”과 “사람다운 삶”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할머니는 조선에서 아무리 좋은 곳을 데려간다 해도 별 관심이 없다 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너무나 놀라운 곳을 많이 가 봤기 때문에 조선은 싱겁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할머니는 매국노도 아니며, 독립투사도 아니고, 그저 살기 위해 돈벌기 위해 일하러 간 별 뜻이 없었던 농촌 출신 새댁이었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는 굳이 일본을 깍아 내릴 필요도, 또 일부러 선전할 필요도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 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 할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일본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고, 인정스러우며, 이웃에 있을 때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한국 간다 했을 때, 이웃에 있던 일본 사람이 ‘조선 나가면 고생하니까 그냥 여기에 살면서 아이들 교육 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말리었다고 했다.  
   또 한 할머니의 경우, 역시 일본에 대한 기억은 대단히 좋았고, 요사이에도 (사람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말을 자주 쓸 뿐만 아니라 일본 있었을 때의 일을 종종 이웃 사람들에게 전한다. 거기서 일본에 대해 나쁜 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분이 친일파이거나 한나라당 앞잡이이거나 박정희 추종자 인 것도 아니다. 그저 그가 겪은 일본에 대한 기억을 알 뿐인 사람이다. 이에 비해 이 두 할머니들이 겪은 조선에 대한 경험은 말 그대로 ‘이 곳에도 과연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그 간 살아왔단 말인가?’ 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한국 전쟁이후 남한의 1인당 GNP는 80달러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국민 전체가 거지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이른 바 똑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일찍이 학문을 배워서 서구의 민주주의를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분명 이들 눈에 비친 한국은 말 그대로 독제국가이었을 것이다. 사실 독제 정치가 통하는 것도 경제 수준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냥 정치 하나만 독제 하고 싶다고 그게 다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 번은 김삼환 목사가 기독교 TV에 나와 이런 말을 전하였다. “공산주의는 모두 가 다 똑같이 가난하게 살자는 체제입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추어 져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가난한 사람도 있고, 잘 사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이지 모두 일률적으로 가난 한 것을 평등이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모든 국민이 똑같이 거지가 돼자 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 말을 한 김삼환 목사는 시골 출신으로 남매가 지지리도 많은 집안에 태어나 시골서 그야말로 가난하게 고생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요동을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은 요동반도의 일출(日出)을 알지 못한다. 그 곳은 지평선에서 해가 떠서, 지평선으로 해가 지는 곳이다. 그 곳은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산을 찾기 어렵거나 가물가물 산이 보일라 말라 하는 곳이며,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에 집 한 채 찾기 어려울 만큼 땅의 끝이 안 보이었던 곳이었다. 20세기 중반 조선 반도의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요동 땅을 밟았던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大地를 밟아 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 대지에서 주는 생산물을 맛 본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대지에 세워진 사관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도 신식교육을 받고, 그 당시 아시아 최강의 군대를 보면서 무관으로서 명예를 갖고자 한 사람들 일 것이다. 이 사안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설명되어 질 수 없는 일이다. 가장 멀다고 하는 거리가 천리인 나라에서 사는 반도국 백성들과 매우 가까운 이웃이 천리 밖에 산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심정은 사뭇 다를 것이 뻔하다.

   아시아를 일장기 앞에 꿇려 본 사람들의 후손과 그것에 맞서 싸우겠다며 반도 사관의 한계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비젼은 사뭇 다를 것이 너무도 뻔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메스컴의 보도를 쉽게 무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체현되지 못하고, 주입시키기 좋은 정보를 선별적으로 방영하는 것이 TV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서 어릴 적부터 적지 않게 불평을 한 한 장로를 알 고 겪어왔다. 그에게는 답이 없었다. 그 답은 오로지 한 가지 그 교회 목사가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장로는 한 가지 사안으로 3-4시간을 이야기해도 자기주장의 요점을 다 쏟아내지도 못하고, 또 그 교회 목사의 판단에서 볼 때 별로 들을 가치가 없는 이야기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들어달라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그것을 다 헤아리지 않았을 때, 그 장로는 소외감을 맛 봤던 모양이다. 여러분들은 이런 장로의 부정적 시각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가? 물론 그 장로는 자기가 체험한 경험의 한계 안에서 나온 말들로 자기 나름대로는 소중한 뜻을 담아서 또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말 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목사의 입장은 사뭇 다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게 하는 말은 많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몇 가지를 놓친 듯하다. 그 하나는 대지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대지의 희망에 타올랐다가 그 욕망을 강제에 의해 거세당한 늙은 사람들의 슬픔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한반도에도 존재하며 또 오랜 기간 동안 존재해왔었다. 그러한 거세된 욕망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어쩌면 후기 신라시대이후 1400 여 년 간 지속된 한반도 사람들의 분열적, 소외 본능의 한 흐름 일 수도 있다. 이들은 시간을 알지 못하며, 공간도 알지 못한다. 그저 닭장 안에 갇힌 닭처럼 주인이 알려주는 시간  만이 전부인 줄 안다. 이들에게는 도전 의식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만주와 섬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스케일을 비판만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체험하지 못해서 모르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배우지 않겠다며 스스로 눈을 가리는 사람은 나무라야 한다.

   여러분들이 일본을 욕하고 싶으면 다음의 책들을 읽고 나서 비판하기 바란다.

<만주원류고>
<일본서기>
<속일본기>
<한단고기>
유득공, <발해고>

   현대 일본인들이 주장했던, “내선일체론” “일선동조론” “만선사론”을 알아보기 바란다. 그러나 이 논리는 한반도 향토사에 길든 사대적 눈치작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섣불리 이해될 약점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