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계승 되지 않았던 권력-신명기 사가에게서 배운 것.

밝은 귀 2005-05-17 (화) 13:42 추천:222 조회:2401 211.xxx.242

제목: 계승 되지 않았던 권력

   신명기 사가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는 판관기는 우리에게 견줄 만한 빌미를 많이 제공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나는 권력유형을 꼽고자 한다.

   판관기의 권력유형은 王政이 아니다. 아니 왕정을 뚜렷이 반대한다. 신명기 역사서의 특징은 왕정이후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약해졌고, 솔로몬을 지난 뒤 급격히 볼품없어졌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비록 판관 시대가 비조직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체제는 나름대로 이스라엘의 신앙(전통)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하겠다. 그리고 그 판관 통치의 특징은 권력이 생물학적으로 승계 되지 않는 데 있다. 이를테면 사사의 아들이 사사직을 계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승계된 기드온(여룹바알?)의 경우 가시나무 같은 아들 하나가 나와 70명을 한 반석에서 쳐 죽인다. 그러니까 아버지(기드온)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들들은 보잘것없었음을 드러내거나 그 체제상 문제가 많았음을 조명한 셈이다. 이는 기드온뿐만 아니라 사무엘에게도 그대로 그러난다. 그러니까 아버지 사무엘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 아들은 백성들에게 지지를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사사 제도의 위기가 오고, 왕정으로 넘어간다고 드러낸다. 사무엘은 그의 통치기간 동안 백성들에게 존경 받은 우두머리였지만 그에게 단 하나 실수가 있었다면 자신의 권력을 아들에게 승계한 것이었다. 즉 신명기 사가는 승계된 권력에 대해 혐오한 듯이 보인다.
   다윗을 승계한 솔로몬 정권은 우상숭배로 귀결 되었고, 솔로몬의 아들은 백성들의 지지를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언자 아히야에게도 잘못 보인 듯하다. 결국 반란이 일어나고 나라는 갈라진다. 그 때 이후 이스라엘은 별 볼일 없었다. 후기 유대시대 때 까지도 다윗왕의 전성시대를 꿈꾸었지만 묵시적 환상가 그룹이나 역사적 예수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약하게 조명 된다. 즉 왕정 지배체제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제 한반도로 와 보자, 고구려나 백제는 일찌감치 왕정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예맥. 고조선도 왕정이었다. 그러나 한반도 사로국은 왕정이 아니었다. 혁거세 칸은 천군적 기능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고, 남해 차차웅은 무당이었다고 김부식은 적었다. 사실 김부식은 거서칸의 아들이 차차웅이라 했지만, 이는 모순이다. 그러니까 한반도 사로국은 고구려나 남부여와 달리 그 권력을 승계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아니 실은 힘에 밀리어 승계할 능력이 못되었다. 차차웅을 이은 이사금 제도 역시 그리 오래 간 것은 아니었다. 결국 지증마립간이 다시 “칸”이라는 이름의 제도를 형식적으로는 썼다.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왕정이 가장 늦게 시작된 곳은 사로국이었다. 김부식은 법흥왕이 왕정 체제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드러내지만 사실 관계는 잘 알지 못한다. 이를테면 문명적 투사에 의해 선비족 (신라정권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해)법흥왕을 일부러 드러내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 신라국이 점차로 왕정 체제로 간 것은 상당히 뚜렷해 보인다. 그리고 삼한통일이 이루어 진 후기 신라시대이후부터는 더 철저한 왕권 체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 때부터 신라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김부식은 母華的事大史觀에 따라 역사를 해석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왕정 계승에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한 분열이 고구려를 몰락시키었음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아울러 후기신라 역시 왕정 지배체제가 신라를 지속시킬 수 없음을 기록한 셈이라 하겠다.
   왕정은 보통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따른 생물학적 요인에 의한 권력 승계 방식인데, 이는 권력 계승자의 능력에 상관없이 부모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 되는 권력이다. 그러나 판관기에는 이런 유형의 권력에 대해 반대한다. 판관기에 따르면 권력은 하늘에서부터 주어진다. 그 사람의 인품이나 능력에 관계없이 루아흐나 신의 계시 같은 특징에 따라 은사가 주어지며 그 은사(카리스마)는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대적으로부터 나라의 안전과 종교와 전통과 정체를 지킬 수 있었다고 사가는 적었다.
   테무친은 권력을 승계 받은 일이 없었다. 만주의 아구다도 승계된 권력이 아니었다. 추장 조영도 권력을 부모로부터 승계 받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달라이라마는 승계에 따른 권력이양을 하지 않는다. 달라이라마 같은 승려들은 대체로 독신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녀가 없다. 그러므로 이 권력은 자녀에게 승계 될 수 없다. 영화 쿤둔에 보면 달라이 라마들은 영성(영적 특징?)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니까 어떤 초월적 힘이나 영성 또는 계시에 따라 정해진다. 달라이라마로 정해진 영적지도자는 티벳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현 달라이 라마는 공산당의 압박을 피해 인디아에서 생활한다.
   혁거세의 아들이 차차웅이라고 한 것은 모순이다. 아마 혁서세 집단은 다른 부족들에게 권력투쟁에서 밀려났을 것이다. 그 뒤 드러난 차차웅은 무당이었다고 김부식은 적었다. 이는 왕정과 사뭇 다르다. 그러니까 한반도 어느 특정지역에서 문명의 단맛(?)에 길들여지기 전 까지 어느 특정 시기까지는 영적 카리스마에 따른 권력이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겠다.
   권력승계의 특징은 예맥.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에게서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예맥족은 유 엠 부찐이 지적한 대로 알타이 제 종족에서 문화적으로 일탈한 종족이다. 다시 말해 치나와 더불어 찬란한 문명을 꽃 피웠다는 뜻이 되겠다. 오늘날 한반도 사람들이 적지 않게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고구려를 계승한 곳이 한반도이다. 그로 인해 선비족의 문화는 계승 되지 못했다. 다만 고구려는 축소된 상태에서 변질된 문화를 가지고 만주를 버리고 한반도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전승된 셈이라 하겠다.
   일본의 경우 권력이 승계 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승계되는 것은 텐노 뿐이다. 그러나 텐노는 일본에서 실권이 없었다. 그냥 이름만 있을 뿐 정말 정치에 있어서는 쇼군(장군: 영주)의 볼모이거나 여러 번벌들의 투쟁 가운데 실권 없이 형식만 가진 황제일 뿐이었다. 적어도 이토오 히로부미 이전까지는 그런 셈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반도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이 텐노를 일컬어 백제 계 혈통이라서 백제를 계승한 곳이 일본이라고 자위 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일본을 통일했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차도 권력을 자식에게 승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도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따른 생물학적 자식으로의 권력 승계는 별로 뚜렷하지 못한 셈이다.
   원제국의 권력 승계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은 오랜 전란을 겪었고, 여러 가문들의 권력투쟁이 있었다. 어느 단일 왕조(?) 그리 오래가지 못한 사회인 셈이다.
   자식에게 권력을 가장 끈질기게 물려주고자 한 나라는 고구려, 백제, 그리고 이씨 조선이었다. 왕씨가 세운 한반도 고려만 해도 그 권력이 별로 안전하지 못한 셈이다. 왕자들 간의 투쟁과 지방 호족들 간의 알력으로 내내 씨름 한 나라가 한반도 고려이었다. 그리고 그 고려도 무신의 난으로 인하여 결국은 최씨들에게로 그 헤게모니가 돌아갔지만 믕골의 침략으로 몰락한다. 그리고 공민왕부터는 왕권이 시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씨 조선은 달랐다. 이씨가 세운 조선은 그 건국자(이성계)부터 마지막 황제(고종)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전주 이씨만이 우두머리가 되어야 했다. 물론 만주의 고구려조차도 고씨가 끝까지 못간 왕통이라 해야겠지만 이씨는 망할 때 까지 유지된 승계적 권력이다. 이는 판관기나 일본이나 믕골이나 발해의 권력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현실이었다.
   한 가지 특징을 꼽자면, 이씨 왕정은 그 국시(國始)를 유가철학(儒家哲學)에 의존시키었고, 그 정권의 입안자나 다름없는 삼봉 정도전은 <맹자>에 영향을 받았다 한다.
   그러나 공구(콩츠)의 말이 적히었다고 하는 <논어>는 그 편집이 완성된 시기가 역사적 공구와 무려 800 여년이 차이가 나고, <맹자> 역시 역사적 맹씨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논어>나 <맹자>는 그저 지나족들의 삶의 모습이 반영된 잠언 형태의 글이라는 것이다.
   이씨 조선은 바로 이것을 이어 받으려 했던 정권이었다. 그 이씨 패거리는 여진족의 안전과 믕골로부터의 배신과 일본으로부터의 혐오감과 상관(최영)의 목을 자름과 그 모든 부수적 문제들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포를 버리고 지나 사람들의 삶이 담긴 잠언에 따라 국가 정체를 바꾼 정권이다. 그 이씨 조선이 열심히 한 것 가운데 하나가 궁궐을 짓는 일과 수도 이전(한양 천도)이었다. 그 이씨 조선은 망할 때까지 궁궐 짓기에 연연했다(이하응의 경복궁 재건).
   이는 고구려도 비슷한 점이 있었다. 고구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수도이전과 성 쌓기 였다. 그러나 바로 그 고구려는 성 안에 갇혀서 망했다. 그러니까 “성 쌓기 잘하는 고구려는 성 안에 갇혀서 망한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가장 자랑할만한 평양성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궁예 역시 고려를 세워 놓고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고 궁궐 짓다가 민심을 잃었고, 나중에 왕씨 세력에 의해 쫓겨난다.

   나 개인적으로 생물학적 요인에 따라 승계 되는 권력은 믿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생물학적 요인이 전해주는 왕정 지배체제가 아닌 영적 카리스마에 따른 권력이 뚜렷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남부여, 이씨 조선은 이 권력 유형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