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종교와 정치

밝은 귀 2005-05-04 (수) 12:21 추천:185 조회:2505 211.xxx.242

제목: 종교와 정치

   구약성서를 접하다 보면 적지 않은 한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 데 그것은 바로 종교와 정치의 긴장 관계라 하겠다. 원래 이스라엘 집단이 종교화 된 집단인데다 초기 그들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 모세도 신의 계시에 따라 움직여 진 사람으로 조명 되고, 그들의 조상도 신의 인도를 따라 부름 받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종교와 정치를 떼 놓고 이해할 수 없는 공동체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와 다른 상황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이와 유사하게 한국 고대사에는 “古朝鮮” 또는 “쥬신(肅愼)제국사” 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역사는 결코 종교(?)와 동떨어지지 않았다. 흔히 아이들이 접하는 교과서에서 조차도 “고조선은 제정일치의 사회 이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종교가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대략은 “단군”이라 하여 ‘단’은 제사장을 뜻하고, ‘군’은 임검을 뜻하는 데, 고대에서 우두머리는 정치와 종교를 함께 행하였다는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단’字가 박달나무를 일컫기 때문에 박달나무 아래에서 관.혼.상.제례를 논하던 장로-?: 노인그룹-를 일컫는다고 한다.) 아무튼 고대에서 종교와 정치는 뗄 수 없었다.
   구약의 경우 종교 그룹은 대단한 힘을 가졌으며, 이들은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고대 그리이스나 로마는 이와 사뭇 달랐다. 물론 그리이스에도 “神話”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플라톤이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Polyteia”(정체: 한국에서는 이 책이 <국가>로 번역 소개 되어 있다) 에도 보면 신화가 많이 나온다. 그 당시 그리이스의 어느 곳에서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대화 형식으로 주고받은 내용은 고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민주주의 정치의 한 교과서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폴리테이아”에 나타나는 그리이스 식 신화는 대체로 범신론 적이거나 다신론 적이며 이런 요소는 호머의 <오딧세우스>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구약의 神觀과 매우 다르다. 즉 고대 그리이스 사회는 계시 종교와 달리 인본주의(?)적인 요소에 따라 민주주의를 한 때나마 추구했고, 고대 로마는 명분에 있어서 공화정을 추구했다.
   그리이스의 신화는 인간적이다. 그리이스의 신들은 슬퍼하며, 기뻐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번뇌하며 장난친다. 그들은 마치 인간의 모습과 유사하거나 매우 인간적인 신들이다. 다만 인간 보다 유능한 것이 인간과 다를 뿐 그들의 신은 매우 인간적인 요소가 강하다. 심지어는 신이 인간과 사랑(에로스)에 빠지거나 인간과 결혼까지 할 지경이다.
   그러나 구약의 신은 이와 사뭇 다르다. 구약의 신은 칼 바르트와 루돌프 오토가 지적한 대로 인간과 질적인 차이를 지닌 “전적인 타자”(Das Ganz Andere)이다. 이 신은 인간이 알지 못하며, 직접 만나면 인간은 죽을 수도 있으며, 죄인 된 사람이 이 거룩한 신 앞에 설 수 없고, 함부로 나타날 수 없는 오로지 홀로 존재하시는(?) 특별한 신인 것이다. 그 신은 섭리 하신다.(출3:14의 “나는 곧 나다”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신의 섭리와 인도를 따라 살았던 고대 히브리인들은 종교와 정치를 결코 떼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종교집단의 지도자들 또한 타락이 극심해졌고, 이에 따른 비판은 예언서에 적지 않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정치는 뗄 수 없는 요소이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이스는 전혀 이와 상황이 달랐다.
   건너뛰어서(양해 바란다) 15세기이후 西유럽사회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가톨릭 공교회로부터 일탈하는 일이었다. 물론 여기에 개신교는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 개신교 가운데 하나인 칼빈파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만들게 된다. 물론 이는 근세 서유럽의 상황에서 나온 당위성이다. 이는 개신교를 전해 받은 한국에서도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칼빈파가 탈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J. P. 막기가 칼빈파와 정치 문제로 영국 정치 상황과 견준 글을 참고 할 수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견주어 본다면 고대 사회에서 나타난 제정일치의 형태는 천군적(天君的) 제사장과 그를 따랐던 백성들의 공동체 형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고대 사회의 중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고대 고구려, 옥저, 동예 시대까지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동맹, 영고, 무천 등이 이를 뒷받침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기 신라시대 이후 이런 전통은 찾기 어려워 진 듯하다. 아니 고구려 후기까지 이런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후기 신라에 이어 세워진 왕씨 고려는 인디아 철학인 불도(佛道)를 국시(國始)로 삼고, 그 뒤부터는 고구려의 동맹이나 사로국의 혁거세 칸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천군적 위상은 사라진 듯 보인다. 물론 훗날 이씨 조선은 아예 국시부터도 유가철학(儒家哲學)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제의는 고대의 것과 사뭇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고구려의 동맹이나 부여의 영고 같은 것이 언제까지 전해져 내려 온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어느 특정 시기부터 사라져 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는 고대의 종교적 전통이 단절되었음을 뜻한다.
   특별히 이씨 조선의 경우 노론, 소론, 동인, 서인 하면서 당쟁을 일삼은 특징이 있었고, 물론 거기에 종교적 제의는 없는 듯하고, 이럴 경우 과거와 단절 되었거나 백성들의 심성에 어울리지 않게 불균형적인 정치 형태가 난무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까 적어도 고대 고조선 사회나 서구 사회를 떠 받쳐 왔던 두 기둥, 종교와 정치의 균형 가운데 이씨 조선은 그 하나를 내팽개쳐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이 된다. 물론 왕씨가 세운 고려는 과거와 단절되었거나 변질된 종교 형태를 유지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종교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국 신학의 흐름 역시 이에 대해서는 무관심 한 듯 보인다. 토착화 신학을 말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유.불.선을 꼽고 있는데 이는 고대사를 모르는 발상에서 기인 할 수밖에 없다.
   조선말 급격히 불안한 가운데 신흥 종교와 사조들이 생기었다. 예를 들면, 원불교, 대종교, 동학, 활빈당, 서학(가톨릭), 실사구시를 중요시 한 학파, 도올이 강조하는 최한기, 신채호가 추구했던 숙신 고조선 기원설, 유득공의 <발해고> 해석(?) 등 놀라운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움직임은 우리가 임상실험이나 변혁을 자체 내에서 이루지 못하게끔 역사가 진행 되었다. 나는 이것을 몹시 아쉬워한다. 적어도 서구가 근세에 엄청난 꿈틀거림의 과정을 겪은 반면에 이씨 조선은 기득권에 의해 철저히 민중들이 외면당하다가 세계사의 흐름 가운데 꿈틀거림을 막 시작했거나 진행 할 무렵조차도 대원군은 경제도 어려운데 ‘경복궁 중건’이라는 일을 행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이씨 정권의 행태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두 번 다시 이런 정권이 만들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천년 가량 혹은 그 이상 종교전통을 잃어버리었거나 왜곡 되게 전수 받았다.
   D. B. 포레스트의 <신학과 정치>라는 책에는 “신화와 정치”를 결부 짓는 대목이 짧게나마 나온다. 그러나 그 시도는 미약해 보이며, 우리의 상황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날 “민주 공화정”이라는 명사에 목을 메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고대 그리이스 사회가 시도했었고, 그것을 해석한 근대 서유럽의 역사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고대 한국의 종교전통이나 정치 전통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가들은 종교전통 없이 “민주주의”에 목을 메는 듯하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는 왜? 서구의 경험에 그토록 메달리어야 하는가? 한국의 종교 전통은 어디로 갔는가? 종교 없이 정치만 있으면 되는가? 종교 전통을 무시할 수 있었던 한 특징은 근대 서유럽의 르네상스적 움직임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한국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왜 한국은 서구의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서구의 프로테스탄트적 전통만을 선교의 지상과제로 삼아야 하는가? 오늘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신학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조선 말 가톨릭의 자체적 번성(영)은 잃어버린 이씨 조선의 종교전통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라고 생각지는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