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구약과 고대 근동: 시리아-팔레스타인>

강성열 2003-03-27 (목) 00:00 추천:74 조회:3368 211.xxx.125

1. 구약성서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을 이루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종교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가나안은 야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에게 약속으로 주신 땅이었으며, 나중에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자손이 정착해 들어간 땅이었다. 엄원식 30;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은 주전 5세기에 블레셋을 역사가 Herodotus가 Palestina라고 칭한 데서 생겨났다. 주전 14세기경에 이집트 관리들은 이 지역을 ‘키나니’ 또는 ‘키나히’라 칭하였고 히브리 족장 시대에는 ‘가나안’이라 불렀다.

1-1. 엄원식 30;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는 지정학상으로 바벨론 문화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동서 문화의 문고리와 같은 위치에 놓여 있으며, 지중해로부터 동부의 사막까지 약 800km가 넘는 가늘고 긴 땅으로 평행을 이루고 있고, 남북으로는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어 양 지역을 동서로 갈라놓았다. (31) 이 두 지역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처럼 그들의 영토를 통합하고 통일시킬 만한 큰 강을 갖지 못하였다. 오히려 지리적인 환경 자체가 그 땅을 여러 개의 작은 지역으로 갈라놓아 통일을 방해하는 거대한 장애물 노릇을 하고 있다.

1-2. 엄원식 31; 이러한 천연적 지형은 오늘날까지 이곳 주민들의 문화와 종교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바, 그들의 종교는 산과 바다와 사막으로 분리된 소도시 국가들에 있어서 지역적인 차이가 심하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적 특성들은 소도시 국가들이나 지방들의 독립성과 독창성 및 다양성을 고무하였고 분열심을 뿌리 깊게 하면서도 전체주의에 반대하여 민주 정신을 배양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하고 분리된 지형은 고대 그리스처럼 부족 연맹 체제의 원시 민주 국가를 낳은 제일 원인이 되었다.

1-3. 엄원식 32; 이 두 지역은 필연적으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두 문명권을 하나로 잇는 교량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오랫 동안 주변의 강대국들에게 종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립적인 정치, 경제, 문화는 발전시키기가 아주 어려웠다. 반면에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그곳 주민들로 하여금 자유와 자주, 그리고 독립 정신의 귀중함과 서민 대중의 인권 존중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1-4. 엄원식 32; 이처럼 이 두 지역은 동서 고대 문화의 모든 완성된 단계와 접촉함으로써 고도로 발전된 사상을 이룰 수 있었다. 알파벳 문자와 유일신 신앙이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33) 전체적으로 보아 이 두 지역은 겨울의 우기와 여름의 건기로 나누어지며, 생명의 비를 가져다주는 서풍과 사막의 건조한 바람만을 가져다주는 동풍의 두 바람이 이 지역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 크게 보아 지금의 레바논과 남부 시리아의 일부 및 팔레스타인 전역 등을 포함하는 가나안 지역의 종교와 문화는 1929년 이후로 프랑스의 고고학자 쉐퍼(C. F. A. Schaeffer)가 발굴하기 시작한 우가릿(Ugarit, 지금의 Ras Shamra) 왕국의 문헌에 의해 그 전체적인 윤곽이 비교적 분명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주전 14-13세기에 시리아의 해안 지역에 존속했던 우가릿 왕국의 역사적인 배경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지역에 정착해 들어간 시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종교와 가나안 종교 사이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서 우가릿 문헌만큼 소중한 자료는 없을 것이다.

3. ‘가나안’(Canaan) 또는 ‘가나안 사람’(Canaanite)이라는 표현은 신구약성서에서 160여회 나오는 바, 그 중 3회만이 신약에 사용되고 있다(마 15:22; 행 7:11; 13:19). 가나안 사람들이 언제 어디로부터 가나안 땅에 이주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대체적으로 주전 4천년대 말기 무렵에 비로소 그들의 인종적인 정체성(ethnic identity)이 확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W. F. Albright, Yahweh and the Gods of Canaan, 110-111; K. N. Schoville, “Canaanites and Amorites,” in A. J. Hoerth 외 2인 공저, Peoples of the Old Testament World, 162-163.

4. 이집트의 문헌들, 특히 아마르나 문서들은 후기 청동기 시대(주전 1550-1200년경)에 가나안의 사람들이 인종적으로 매우 다양했다고 보는 성경의 기록을 확증하고 있다(창 15:19-21; 출 3:8, 17; 13:5; 23:23; 33:2; 34:11; 민 13:29; 신 7:1; 20:17; 수 3:10; 9:1; 11:3; 12:8; 24:11; 삿 3:5; 왕상 9:20; 대하 8:7; 느 9:8; 에 9:1 등). 그러나 그들 다양한 인종들은 자주 ‘가나안 사람들’로 통칭되었으며(창 10:15-19; 민 35:10; 겔 16:3), 그 중에서도 아모리 족속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아모리 사람들’로 불리우기도 했다(수 24:15): J. Finegan, Myth and Mystery, 121-122; K. N. Schoville, “Canaanites and Amorites,” 166-167; A. R. Millard, “The Canaanites,” in D. J. Wiseman (ed.), Peoples of Old Testament Times (Oxford: The Clarendon Press, 1975), 29-38.

5. 헷 족속은 창세기 10:15; 23:3-20; 27:46에 언급되며 아나톨리아(Anatolia, 지금의 터키)를 중심지로 삼고 있었다. 남부 러시아에서 아나톨리아로 이주한 듯한 헷 족속은 1750-1450년까지 고왕국을 이루면서 카투사스(Khattusas, Boghazkoy)를 수도로 삼았다. 그후 50여년간 약했다가 1400-1200년 동안(13왕) 강력한 제국을 이루었다(리빙스톤 55-56).

6. 블레셋은 1200년경 에게해 지역에서 왔다. 이집트는 그들을 바다 민족이라 불렀다. 가사, 가드, 아스글론, 아스돗, 에글론 등의 다섯 도시 연맹체로 되어 있었다(수 13:3; 삼상 6:17-18). 창세기 26:1은 그랄 왕 아비멜렉을 블레셋 왕으로 칭하며 10:13-14은 블레셋을 이집트와 관련시킨다. 블레셋은 헷족속에게서 철기 문명을 배웠다. (리빙스톤 57).

7. 우가릿 문헌에 의하면 북서 셈족어권(North-west Semitic)에 해당하는 가나안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나 이집트 지역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에 있는 여러 요소들을 신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상정해 놓고서 그들이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연계 안에 있는 다양한 힘들에 대하여 무기력함을 느꼈고, 그래서 그러한 힘들에게 의존하는 태도야말로 안정된 삶을 가능케 한다고 믿었다.

7-1. 특히 가나안 땅은 사막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비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처럼 큰 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은 비와 관련된 풍요와 다산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비와 관련된 신들이 그들의 종교와 신앙의 중심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가나안 만신전의 주요 신들은 고대 근동 지역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풍요나 다산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8. 거의 모든 신들이 풍요를 제공하는 자연계의 힘들과 관련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신이 바로 천둥과 번개의 신 하닷(Hadad)으로서, 그는 바알(Baal)이라는 별칭(epithet)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가릿 북쪽 지역의 언덕배기에 자신에게 봉헌된 큰 신전을 가지고 있던 바알은 농사를 잘 짓게끔 비를 내려주는 폭풍우의 신(storm-god)이요, 지상 세계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