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창 18:9~15)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창 18:9~15)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5

강성열 교수
2021년 11월 25일(목) 10:30
오늘의 본문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향한 하나님의 아들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사라의 반응을 담고 있는 바, 이러한 내용은 사라의 아들 출산을 약속하는 세 사람(9~10절), 사라의 임신 불가능한 현실에 대한 해설자의 설명(11절),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사라(12절), 사라의 아들 출산을 다시금 약속하시는 하나님(13~15절) 등으로 세분된다.

9~11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극진한 점심 식사를 제공받은 후에 식사를 마친 세 명의 손님들은 먼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가 장막 안에 있다고 대답했다(9절). 세 사람의 이러한 질문은 그들이 마침내 자기들의 정체를 드러냈음을 암시한다. 10절 서두에서 갑자기 그들을 3인칭 남성 단수형으로 칭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13절에서는 노골적으로 "야웨"를 주어로 하는 문장이 나온다.

아브라함의 답변을 들은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면서 마치 사라에게 들으라는 듯이 "내년 이맘때" 자신이 반드시 그의 아내 사라에게로 돌아올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1년이 지나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임을 예고하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라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아브라함 뒤에 있는 장막 문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10절).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대화 중간에 들어 있는 11절은 해설자의 시각을 담고 있다. 그는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그 하나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사라에게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다는 것이다. 해설자의 이 두 가지 설명은 인간의 한계 상황을 지적하는 것으로, 사라의 임신이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 지상 세계의 차원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요, 따라서 나중에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임을 강조하는 효과를 갖는다.

12절~15절: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장막 문에서 엿들었던 사라의 중얼거림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그녀는 속으로 웃으면서 해설자와 비슷한 시각에서 두 가지 불가능한 현실을 지적한다. 그 하나는 자신이나 아브라함이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늙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사라 자신에게 더 이상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사라가 언급한 "즐거움"(pleasure)이라는 낱말이다. 히브리어 '에드나'를 번역한 이 낱말은 다른 히브리어 낱말 '에덴'과 그 발음이 매우 유사하며, 어근도 거의 같다. 많은 학자들은 '에드나'가 부부 관계의 성적인 즐거움(sexual pleasure)을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본다. 따라서 사라의 말은 두 사람이 더 이상 부부 관계를 할 수 없는 나이라는 의미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라의 마음속 생각과 웃음까지 알아채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압축하여 인용하시면서 우회적으로 사라의 불신앙을 가볍게 책망하신다. 왜 사라가 웃으면서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라고 말하는지를 물으신 것이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다시금 사라에게 들으라는 듯이 두 가지를 강조하신다. 그 하나는 일반적인 진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부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수사학적인 질문의 형태로 되어 있다. "야웨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질문이 그렇다. 그리고 하나님의 두 번째 강조점은 두 사람의 실제 상황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기한이 이를 때에, 즉 1년 후에 야웨께서 사라에게로 돌아오실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의 형태로 되어 있다(14절).

하나님의 말씀을 엿들은 사라는 그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가 웃지 않았다고 변명하였지만, 하나님의 눈과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는 말씀이 그렇다(15절).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라의 이 웃음은 아브라함의 웃음(17:17~19)과 마찬가지로 후에 태어날 아들의 이름이 "그가 웃을 것이다"(이삭; 정확한 발음은 '이츠하크')라는 뜻을 가질 것임을 암시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바로 앞서 주어진(17장, 특히 16~19절) 아들 약속과 거의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7장에서 주어진 아들 약속이 할례를 중심으로 하는 영원한 언약의 한 부분으로 주어진 반면에, 여기에서 주어진 약속은 전적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에 국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제까지의 모든 언약이 아브라함을 상대로 하여 주어진 것들이었다고 한다면, 이 일곱 번째 약속은 사실상 그의 아내 사라를 상대로 하여 주어진 것이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의 이름뿐만 아니라 사라의 이름까지도 바꾸어 주신(17:15) 하나님께서 이제는 직접 사라를 향하여 그녀가 비록 늙기는 했지만 앞으로 1년만 있으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 것이다.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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