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2020.08.24 03:00 입력 2020.08.24 03:02 수정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년이나 삼십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생태 잡지 ‘녹색평론’의 29년 전 창간사의 첫 구절이다. 유독 힘든 여름을 나며, 선견지명이 담긴 이 잡지의 글들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손제민 사회부장

손제민 사회부장

시베리아 영구동토대가 녹을 정도로 더운 6월이 가고 최장 장마 끝에 다시 폭염이 왔다. 홍수로 잠시 방심했던 코로나19가 재유행하고 있다. 내 주변을 포함해 유독 많은 장례가 있었다. 코로나19 사망자를 담은 관들을 땅에 묻는 외국 모습이 자주 보도된 것도 만연한 죽음의 이미지를 키웠다. 이 터널의 끝이 어디일지 모르기에 더 암울하다. 백신이 개발돼도 전염병은 이름을 바꿔 다시 찾아올 것이고, 기후 재난은 더 잦은 빈도로 더 강하게 우리를 때릴 가능성이 높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사태의 본질에 해당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좀 더 예민해진 점이다. 당장 내가 종사하는 업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한겨레신문은 국내 언론 최초로 ‘기후변화팀’을 만들어 이 문제의 보도를 선도하고 있다. 매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업화 이전, 10년 전 등과 비교해 시각화해 보여준다. 전담 팀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기후위기 관련 보도를 한다. 경향신문도 해녀, 지리산 고사목, 산불, 농업, 폭염 속 노동자 등 ‘기후변화의 증인’들을 통해 기후위기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연속 보도를 했다.

탈육식, 채식에 대한 조명도 많아졌다. 온실가스의 많은 부분이 공장식 소 사육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이제 상식이 됐다.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는, 자원도 사람도 함부로 쓰고 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금의 위기가 우리 삶의 전반적인 방식과 연결돼 있다는 깨달음이 커졌다. 동물살생(육식) 문화를 돌아볼 필요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많이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과학적으로 엄연히 입증되어 왔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내 일’이라고 느끼기 어려웠던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 전환에는 언론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국회미래연구원의 ‘한국인의 선호미래 조사 연구’ 공론조사 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이 조사는 지역·연령 인구집단 비율로 502명을 선정해 숙의토론을 한 결과이다. 연구진은 시민들과의 논의를 거쳐 30년 뒤 미래상을 급진성장, 안정성장, 보존분배, 현존분배 4가지로 유형화했다.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래는 성장보다는 분배에 집중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자원을 잘 보존하는 보존분배(43%)였다. 지금처럼 에너지와 자원을 쓰고 경제성장에 매달리는 안정성장(9.4%)은 가장 덜 선호되는 미래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부산의 30대 여성은 “평균 폭염일수 45.5일의 미래에서 60대를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고, 경기도의 30대 남성은 “미래사회 이슈 모두 중요하지만, 결국엔 자연환경이 유지되어야 다른 이슈도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탄소제로의 세상이 선호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시민들은 이 사회가 현실적으로 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는 안정성장(43.4%)이라고 봤다. 가장 피하고 싶은 미래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지금처럼 살아서는 30년 뒤 미래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그럼에도 안정성장의 현상 유지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는 것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이 사회가 변할 것 같지 않다’는 무력감의 표현일 수 있다.

무력감은 정치의 역할로 이어진다. 이번 홍수 때 4대강과 태양광패널 논쟁에 매몰된 정치권 논의를 보면서 정치가 시민의 요구를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정부가 내놓은 (그린 뉴딜을 포함하는) 한국형 뉴딜의 안정성장 모델은 문제의 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해법이다. 정치의 기후위기 무관심은 기성언론이 제기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려는 관성과도 관계있다.

돌아가신 ‘녹색평론’ 편집인 김종철 선생은 “우리의 장래를 늘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달려 있는 정치권력에 맡겨놓을 수는 없다”며 시민의회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과 정치의 역할을 다시 묻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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