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어느 예언자의 감옥살이

강성열 2003-02-22 (토) 00:00 추천:733 조회:8349 211.xxx.125

<1996년 3월에 호신대학보에 실은 글입니다. 철 지난 글이지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되어서 재판정에 서게 되다니 말이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그랬으니 세상이 곱절로 바뀐 기분이다. 이게 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덕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넘어져 있던, 그래서 항상 시간의 흐름에 뒤처져 있던 우리 역사가 이제야 빠른 속도로 제 자리를 찾아간다고들 법석이다. 참 좋은 일이다. 진작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새롭다. 20-30년 전부터 이런 일이 있었라면 우리 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갔을런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바로 서기로 되어 있던 역사가 정말로 일어섰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이렇게까지 말한다. 일어서서 한참 잘 나갈 것 같던 역사가 다시금 뒷걸음질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이다.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들을 여기서 다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단지 한 가지만을 지적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근래에 문제가 되고 있는 김병균 목사의 구속과 재판에 관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김병균 목사는 본 대학교의 동문으로서 나주의 고막원 교회(주: 현재는 영산강 교회 시무)에서 목회하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이다. 그는 농촌에서 목회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서 이제껏 약하고 힘없는 농민들의 삶 속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해 왔다. 그러나 그는 결코 복음을 입으로 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농민들의 고통과 아픔에 직접 참여하여 그들의 권익을 위해 힘껏 싸워 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인권 회복, 민주화, 평화 통일 등의 국가적인 문제들을 놓고 기도하며 헌신해 왔다. 김병균 목사는 참으로 이 시대의 온갖 불의와 불법에 저항하는 하나님의 예언자이고자 했고, 또 실제로 그러했다.

그러한 그가 이제는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양떼들과 생이별하여 감옥에 갇혀 있다. 작년 11월 29일 새벽에 상식선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강제 연행되어 이제껏 옥살이를 하고 있다. 조국통일 범민족 연합(범민련)에 가담하여 불법적인 통일 운동을 해왔다는 것이 그 주된 죄목이었다. 이른바 국가 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범민련은 지난 1991년 11월에 이미 사법부에 의해 이적 단체로 규정되어 그 활동이 거의 정지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꼬박 4년 동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안기부는 정확하게 4년이 지난 작년 11월에 와서, 그것도 제15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느닷없이 범민련에 관련된 사람들을 무더기로 구속하였다. 당시에 김병균 목사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온 후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잡혀 갔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참으로 상식을 넘어서는 권력 남용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의 여론에 밀려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에 가둘 때는 언제고, 또 그들의 시대에나 있음직한 방법으로 양심적인 목회자를 가둘 때는 또 언제인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정부 지도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평화롭게 목회에 전념하는 하나님의 종을 그렇게 함부로 잡아가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그리고 사회와 양심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신앙심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선교에 앞장서 온 주의 거룩한 종을 그렇게 함부로 감옥에 가두고 재판해도 좋은 것인가. 개혁과 변화의 기치를 내걸고 신한국 건설을 표방하는 문민 정부가 정말 이런 식으로 사람의 권리를 짓눌러도 괜찮은 것인가. 이제껏 그가 섬겨 온 연약한 양떼들은 어떻게 하고 또 하나님의 신성한 교회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무릇 하나님의 예언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고통을 당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앞세우는 문민 정부가 그 옛날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괴롭히던 왕권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계승자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도덕성과 정통성을 앞세우는 민간 정부가 행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 교권자들의 충실한 대변인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가슴을 짓누른다.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이루어 개혁의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통일의 그 날을 앞당기겠다고 자부하는 문민 정부가 과연 이래서야 되겠는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오늘의 정부 당국자들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예언자가 가는 길은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령 절대 권력을 가진 자라도 예언자의 가는 길을 훼방하지 못한다. 어디 그 뿐인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의 입을 막지는 못한다. 설령 폭력을 써서 예언자를 침묵케 하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어떠한 폭력과 위협 앞에서도 침묵을 지키지 못한다(렘 20:9).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그 일에 충실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권력자의 음융한 계략 앞에 굴해서도 안된다.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자들 앞에서도 그는 마땅히 되어야 할 올바른 길을 사람들에게 용감하게 전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정부라면 하나님의 예언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말하게 해야 한다. 예언자의 메시지가 당장에는 기분 나쁘게 들리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언자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 당장에 그의 메시지가 불편하다고 해서 속좁게 그를 침묵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를 감옥에 가두어서도 안 된다. 그를 자유케 해야 한다.

다시금 말하거니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하나님의 신실한 종 김병균 목사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 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양무리들이 기다리는 그의 거룩한 목장으로 그를 돌려 보내야 한다. 그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농민들의 품으로 그를 보내 주어야 한다. 그로 하여금 이제껏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일구어 온 이 나라의 외지고 그늘진 곳에서 계속해서 외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로 하여금 이 나라의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위해, 그리고 평화 통일의 앞날을 위해 계속 일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문민 정부가 진짜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