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 선생님을 기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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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열  2021-02-22 (월) 14:48 추천:1 조회:227 121.xxx.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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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사들의 빈소에 잘 가지 않는다. 얼마 전 천승세, 남정현 선생의 빈소에도,김종철 선생의 빈소에도, 몇년 전 신영복 선생의 빈소에도 훨씬 전 이영희 선생이나 박완서 선생의 빈소에도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의례적인 장소에 나가기를 꺼리는 오랜 습벽 탓이 크지만 생전 고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꼭 가 뵈어야 할 분들인데도 나아가 마지막 인사를 못 드리는 데에는 매우 궁색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아 상가가 쓸쓸할 일은 없을 터이니 나는 홀로 어두운 집 방구석에 앉아 빈소에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움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을 삶과 죽음과 그것이 내게 끼친 것들을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 더 진지한 애도의 방식이라는 매우 자의적인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백기완선생 빈소에는 다녀왔다. 그것은 그가 불굴의 민주투사 백기완이기 이전에 외우 백원담 선생의 부친이기 때문이었다. 백원담 선생과는 80년대 말 문화/문학운동의 도반에서 지금 계간 <황해문화>의 편집진으로서 30년 넘는 소중한 인연으로 묶여있는 터라 그 부친상에 빠지는 건 예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집구석에 또 홀로 앉아 친구의 부친이 아닌 공적 존재 백기완 선생을 생각한다. 그 기골장대한 거리의 투사, 민주전선의 야전시령관, 날개 펼친 우리의 장산곷매를 생각한다. 나같은 평생 책상머리의 서생은 그가 노래한 것처럼 ‘산 자’로서 그의 뒤를 따른다거나 그를 존경하는 일조차 언감생심이다. 그는 언제나 바람부는 거리에서 불의와 모순에 정면으로 짓쳐들어가는 행동의 인간이었고, 그의 사상은 곧 그 행동과 실천의 자연스러운 귀납적 총합이었으니, 언제나 어둡고 안온한 집구석에서 늘 고개를 외로 꼬고 앉아 비스듬히 세상을 ‘관조’해온 관념과 형이상으로 가득한 연역적 인간은 그 근처에도 갈 수 없다. 오직 경외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도 피와 살로 된 사람이지 평생 강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933년생, 10대에 해방, 20대에 전쟁, 30대에서 40대에서 50대에 독재... 아무 한 일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힘겨운 삶이었을 텐데 그 길고 험한 세월 내내 거리에서 싸우면서 살았던 그의 삶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싶다. 그는 거리의 투사로 입신하기 이전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건강한 소년이었고 시인을 꿈꾼 마음결 고운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아마도 평화로운 시대에 실았더라면 그는 시를 쓰는 축구선수 혹은 축구를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독한 시절은 그를 운동장에서 뛰는 대신 거리로 내몰았고, 서정시를 쓰는 대신 격정의 서사시와 분노의 격문을 쓰도록 강제했다. 그런 삶은 불행한 삶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소외된 삶이다. 한 사람이 팔순이 넘어서까지 거리에서 스크럼을 짜거나 농성을 하고 시 대신 격문을 써야 하는 세상은 통째로 잘못된 세상이다. 백기완 선생은 민주주의와 통일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운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처럼 이상한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한 불행한 삶을 대신 살아냈던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의 삶이 아니라 희생양의 삶이다. 모두가 나누어서 맡을 짐을 이렇게 몇사람의 등 위에 얹어 놓고 모른 체하는 건 사람으로서 할짓이 아니다. 그게 그 분 자신에게는 얼마나 지독한 폭력이고 학대였을까. 나는 그것이 무엇보다 슬프고 안타깝고 죄송스럽다. 이제 저 세상에서는 모든 공적 책무며 사명이며 더 이상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 먼저 동네 조기축구회부터 가입해 땀 흘려 공 차고 저녁에는 향나무 연필 곱게 깎아 지는 노을 바라 멋진 서정시 한 편씩 쓰는 그런 나날뿐이시기를 손 모아 빌어본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의 페이스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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