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열교수의 구약사랑

가인과 아벨의 제사

강성열

2009-09-19 (토) 11:14 추천:539 조회:12241 211.xxx.126

<통독큐티 09년 8월호 바이블 칼럼>

- 가인과 아벨의 제사 -

창세기는 성경의 첫 책이어선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요, 많이 읽는 것만큼이나 궁금한 점도 많은 책이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이 본문과 관련하여 언제인가 설교를 앞둔 재학생에게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본문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얘기가 나오는데, 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는지 잘 알 수가 없다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누가 봐도 정말 궁금한 점이 아닐 수 없다. 왜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는데 가인의 제사는 그렇지 못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본문을 직접 살핌으로써 가장 먼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히브리어 본문은 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더 정확하게는 제물-를 똑같이 히브리어 ‘미느하’로 표현하고 있다. ‘미느하’는 ‘선물’(膳物)과 ‘소제’(素祭; cereal offering)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낱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드린 제물이 무엇이었느냐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레위기에 규정된 이스라엘의 제사법에 의하면 곡물로 드리는 제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위기 2장에 있는 소제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가인은 곡물을 드린 까닭에 그의 제사가 안 받아들여진 것이고 아벨은 피를 흘리는 양의 제사를 드린 까닭에 그의 제사가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러한 판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속죄 제물로 보는 신약의 관점에서 생겨난 것이다(참조. 히 9:22). 그러나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이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양자 사이에 있는 제물의 차이는 문화권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지 결코 제사의 정당성을 보증해 주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어찌 땅을 갈고서 그 열매로 사는 가인에게서 무리하게 양이나 염소의 제사를 원하시겠는가! 하나님은 결코 사람의 직업이나 그 직업과 관련된 제물의 종류를 차별하는 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창세기 4:4-5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본문을 새번역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주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이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아벨의 제물뿐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제물보다 먼저 받으신 것은 아벨이라는 한 인격이었다. 그래서 본문은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설명하는 히브리서 11:4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그러니까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린 것은 순전히 그가 가진 믿음에 의해서였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그를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흠 없고 순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아벨의 제사는 그의 정결한 생활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가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사실 그의 삶 전체를 드리는 제사였다. 즉 아벨은 생활 속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려고 애썼고 그러한 삶의 연장선상에서 정성스러운 제사를 드린 것이다.

다소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시는 말씀(4:7)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가인의 삶과 관련된 이 말씀을 거꾸로 해석한다면, 아벨이 평소에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제사도 바른 것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결론은 제사가 공의롭고 바른 삶과 같은 차원에 속한 것임을 강조하는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삼상 15:22; 사 1:10-17; 호 6:6; 암 5:21-24; 미 6:6-8; 렘 7:3-7; 잠 15:8; 16:6; 21:3; 롬 12:1-2 등). 제사는 곧 그것을 드리는 자의 삶이요 인격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뒤집어서 얘기한다면 삶과 인격 자체가 곧 제사인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벨만큼의 성숙한 믿음이 없었던 까닭에 자연히 그의 제사는 흠 없고 순전한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바친 아벨처럼 정성을 기울여 제물을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제사였던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별로 없었다. 이것은 그가 자기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장에 화를 내면서 얼굴색을 바꾼 것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가인은 평소의 생활 속에서 올바른 행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죄의 유혹에 너무도 쉽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죄의 지배를 받고서 사는 불경건한 사람이었던 것이다(창 4:7). 그의 이러한 성향은 마침내 동생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그를 들에서 쳐서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8절). 그는 동생을 죽이고서도 뻔뻔스럽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숨기면서 하나님께 대드는 파렴치한 사람이었다(9절). 이러한 그가 하나님께 아무리 좋은 제사를 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가인이라는 인격과 그의 삶을 받지 않으신 것이고, 당연히 그의 그릇된 인격과 삶으로부터 비롯된 그의 제물까지도 받지 않으신 것이다.